엡스틴 계급 ①
Bluedot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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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관객 1,000만을 앞두고 있는 장항준 감독이 지난 1월, "천만이 될 리도 없지만, 만약에 된다면 전화번호를 바꾸고 개명하고 성형하겠다. 아무도 날 못 알아보게 하겠다”라고 말했던 일이 화제가 되었다. 장항준 감독만 그런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돈은 많고,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고 싶지만, 남들의 시선을 받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욕심이 더 커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세상에는 돈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다. 가령, 돈을 아주 많이 벌고 싶다면 열심히 일하거나 재테크만으로는 안 된다. 환경을 나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하고, (업체 선정이나 지원금 등의) 기준을 바꾸거나, 더 나아가 정책까지 유리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나를 모른다면 그렇게 할 수 없다. 대중은 나를 모르는 게 좋지만, 내게 필요한 사람들—정보를 가진 사람들,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

2019년 여름, 뉴욕 맨해튼의 교도소에서 사망한 제프리 엡스틴(Jeffrey Epstein)의 목표가 그거였다. 그는 미국을, 아니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과 언제든지 쉽게 만날 수 있지만, 대중의 감시로부터는 자유로운 사람이어야 했다. 실제로 그는 그 목표를 달성했다. 맨해튼에 있는 1억 달러짜리 저택을 비롯해 플로리다, 뉴멕시코, 파리에 고가의 부동산을 갖고 있었고, 카리브해에는 개인 섬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곳들을 오갈 수 있는 보잉 727, 걸프스트림 비즈니스 제트와 헬리콥터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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